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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마지막 산책.

record_yun 2015. 10. 12. 15:14


금요일 오후에 급하게 다르항 주민들의 단체톡방이 울렸다.

내일 다르항 뒷산으로 산책을 가려고 하는데, 오실분은 간식이랑 물이랑 챙겨서 오라는 톡을 봤다.


진짜 그 문자를 받고 저녁부터 출발 30분전까지 고민했다.(물론 고민하며 챙기고있었음.)

그렇지만 벌써부터 저녁과 아침기온이 영하를 왔다갔다하고 있는 시점이라 이번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에 급하게 참여하겠다고 했다.



사진에 보이는 능선을 따라 걸었다. 폰에 파노라마 기능이 없어서 이럴때 아쉽다.

몽골의 초원은 착시현상이 참 심하다. 정상까지 금방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걷다보면 1~2시간은 훅 지나간다.

벌써 겨울초입인지, 새파란 초원이 점점 색이 빠지고 있다. 

정말 여름엔 초록초록 했던 곳인데...



선생님이 직접 만드신 족발이랑 김치전이랑 각종야채 + 이제 생산이 중단된 몽골 흑맥주.

정말 맛있었다. 배도 엄청 고팠지만, 드넓은 초원에서 아무도 없이 간혹 울리는 곤충이나 새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먹는 고기와 맥주라니!! 그냥 먹어도 맛있는데 이런 환상적인 환경에서 먹을 수 있다니!! 얼마나 감사하던지. 게다가 선생님 두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먹는데 정말 좋더라. 




한참 능선을 따라 올라가다 만난 나무, 정말 풀밖에 없는 곳에서 저렇게 서있는 나무를 보고 새삼 감탄했다.

같이가신 선생님 두분도 나오셨네^^ 

두분 체력이 정말 대단하셨다. 역시 산악인이셔서 그런지 뒤쳐지는 나를 엄청 배려해주셨다. 

게다가 선생님들이랑 이야기했던 것들이 너무 좋아서, 걷는 내내 많은 생각을 하게 됬다. 확실히 어른들과의 대화는 항상 무언가를 배우게되는 것 같다.



2시간정도 걸었을 때 찍은 사진. 저~ 왼쪽에 신다르항이 살포시 보인다. 

확실히 일교차가 커서 그런지 안개가 살짝 껴있었다.

눈이 탁트이는 전경이 진짜 멋있었다. 폰카메라로 담을 수가 음슴.



능선 막바지에 다다르면, 공동묘지가 보인다. 그래서 살포시 가고싶다고 선생님께 말씀 드렸다.

선생님께서도 그 나라의 문화를 볼 수 있는 한 부분이 무덤이라고 하시면서 흔쾌히 가자고 하셨다. 

무덤이 왜 가고싶었냐면, [어떤 날] 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각자의 여행기를 적은 책인데, 그 책 내용중에 무덤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 내용 중에서 무덤산책을 한다는 대목이 상당히 인상이 깊었었다. 


우리나라 무덤을 생각하면 음침하고, 귀신이 나올 것 같고 그런데 몽골 묘지들은 상당히 정갈한 편이였다.

사람이 죽으면 저렇게 하얀색 돌을 무덤에 깔아주는데, 하얀 것이 죄를 없애준다라는 설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저렇게 무덤마다 하얀 돌이 깔려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죽으면 그 무덤을 방문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시 무덤을 방문하면 귀신이 붙는 다는 속설이 있단다. 어쩐지 조화나, 사람이 한명도 없더라니.


중간중간 가난한 집은 저렇게 하얀 돌을 못깔아줘서 콘크리트를 붓고 마감한걸 보니 조금 안타까웠다.

죽어서도 빈부격차가 보인다니. 너무 슬픈 현실이라며 잠깐 우울해졌다.


그리고 나서 다르항으로 돌아왔다. 10시에 출발해서 3시가 조금 넘어서 집에 도착했다.

사실 다리는 별로 안아팠는데, 발이 아프길래 이상하다 싶더니..

집에와보니 발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그래도, 그 이상의 감사한 이야기들, 감사한 풍경들을 보고와서 너무 좋았던 하루였다.

다음에 또 가고 싶은데, 갈 기회가 있을진 모르겠다.


선생님이 마지막에 웃으면서 너도 참 큰일 났다. 여행에 맛들이기 시작했어. 라고 하셨는데

정말 큰일 난 것 같다. 자꾸 머리 속에서 이곳저곳 갈 생각이 둥둥 떠다녀서.